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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세계 속의 일본율령국가 연구 東亞世界中的日本律令國家研究
作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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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版日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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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1
閱讀格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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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IS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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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8949949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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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지구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금년은 광복(光復), 해방(解放) 75주년이 되는 해요, 한・일국교정상화 55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금년의 의미는 한・중・일의 동아시아에 있어서 ‘역사문제’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뇌는 ‘동아시아공동체’론을 역설하고 한국의 수뇌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러시아와 일본・미국의 가운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한국역할론’을 강조하지만 한・중・일 삼국사이의 ‘역사문제’의 해결이 없고서는 그 말들은 어딘가 공허한 정치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또 유럽에서 유럽연합(EU)이 성사되었다고 해서 동아시아세계의 블록화도 금방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발상은 호사가와 낙관론자들의 원망(願望)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1995년에 필자는 동경대학의 대학원에서 일본유학을 시작했는데 그 해는 불황 속에 허덕이고 있던 일본열도를 뒤흔든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했다. 먼저 하나는 6,4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던 ‘한신아와지(阪神淡路)대지진’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움진리교’에 의한 동경 도심 한복판에서의 사린가스 살포에 의한 무차별테러사건이다. 두 사건은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라는 상이점이 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연이어 터진 두 사건이 준 충격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헤이세이(平成)불황’이라는 경제적 불황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일어난 두 사건은 정신적 공황마저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의 10년간의 유학생활에서 느꼈던 일본인의 마음이란 ‘불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된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시대에 여유가 생길 리가 없고 또 여유가 없는 데 자신감이 있을 수가 없다. 나아가서는 자신감이 없는 데 남에게 배려가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에서의 재난에 대한 이해는 2011년에 발생한 이른바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연쇄복합재난을 목도하고는 발 빠르게 하나의 연구팀을 결성하게 했으며, 또 이것이 단초가 되어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내의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설립, 나아가 본교 내의 6개 단과대학이 결집한 ‘재난안전융합연구원’의 창립으로 이어지는데 일조가 되게 했다.
저자는 이러한 곤란의 시기에서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의 싹을 피워내는 것이 역사가의 작업이 아닌가를 느낀다. 그 희망의 싹은 다름 아닌 타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서 배가되는 것이라고 느낀다. 타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그 나라와 그 민족에 대한 배려를 얻게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자국의 역사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에서 허물은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밖에서 자국의 역사와 지금까지 행해진 자국역사의 연구 성과를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겠다든가 타국사의 이 사료와 이 연구 성과와 맞추어보면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방법론이다.
본인의 전공은 일본고대사이다. 일본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의 마음과 문화 그리고 일본인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일본열도에 대해 이해와 애정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사고의 귀착점은 자국의 역사와 그 민중과 국토에 대한 가없는 이해와 애정으로 귀결된다.
이에 저자는 일본고대국가의 도달점이라고 말해지는 ‘일본율령국가’에 대해 사반세기에 걸쳐 연구했던 것을 발표한다. 일본율령국가에 대한 연구의 접근방법은 논자에 따라 가지각색이고 논점에 따라 천양지차의 연구 성과가 있지만 ‘백제왕씨’를 중심소재로 한 전문 연구는 별로 드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제왕씨라는 말에 한국사에서 취급하는 백제왕의 연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은 전혀 다르다. 7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백제라는 나라와 백성은 사라져 없어졌다. 그런데 백제왕족의 후손들이 백제멸망 후에도 일본열도에서 백제왕씨라는 이름으로 온존되어 일본율령국가의 관인으로서 때로는 천황가의 여성으로써 면면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그렇다면 일본율령국가는 어떤 이유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집단화시켰는가. 또 어떤 이유로 그들을 온전하게 해서 무엇을 기대하였든 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백제왕씨의 성립에서부터 종언에 이르기 까지를 추적하는 가운데 벡제왕씨의 존재가 일본율령국가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변환의 과정 등의 여러 면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고 일본율령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로서 대외적 문제 즉 663년의 ‘백촌강의 싸움’의 패배가 이야기되지만 백제왕씨의 성립에 있어서도 ‘백촌강의 싸움’ 후의 사정이 관련되는 것이 역시 확인되었다.
또 전체적으로 보면 위의 여러 문제의 이해가 일국사적인 관점만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는데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율령국가의 문제도 백제왕씨의 문제도 역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의 접근에서만이 가능한 것임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일본의 완성된 국가형태라고 말해지는 율령국가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기본법인 ‘율령의 제정’ 둘째, 율령의 이념을 토지에 구현한 ‘궁(宮)과 경(京)의 건설’ 셋째, 율령국가의 공식 역사기록인 ‘관찬 사서의 편찬’ 넷째, ‘동이의 소제국을 지향하는 대외관’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론 형식으로 세 편의 논문을 첨가하고 있다.
이 논문들은 귀국 후 일본율령국가를 부감하는 중에 집필한 것 중의 일부이다. 제1부 말미에, 「‘임신의 난’과 日本—동아시아세계의 재편과 관련하여—」, 또한 제2부 말미에, 「고대 일본의 도시와 이동의 문제—遷宮과 遷京—」, 마지막 제3부 말미에, 「‘육국사(六國史)’의 편찬과 ‘일본율령국가’의 수사(修史)사업」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세 편의 논고는 이전에 발표한 구고이지만, 본 논저의 1, 2, 3 각 부의 논지를 확장 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관련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 게재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성과에 대한 감사의 변을 서술해야겠다. 우선 학문의 입구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곁에서 노심초사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일사(一史) 김현구 선생님(현 고려대학 명예교수)께 감사를 올린다. 일사 선생님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지만 염치없게도 제자는 틈날 때마다 갈 길을 여쭈어 보려 한다. 연대대학원 재학 시절의 지도교수 박영재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일본 동경대학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였던 사토 마코토(佐藤信) 선생님(현 동경대학 명예교수)과 박사논문의 지도에 관여해 주신 이시가미 에이이치(石上英一) 선생님(현 동경대학 명예교수)께도 가없는 감사를 드린다. 또 대학원의 세미나수업에서 지도를 해주신 오쓰 도오루(大津透) 동경대 교수, 유학 기간 내내 끈끈한 인연을 맺은 미카미 요시타카(三上喜孝)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 이나다 나쓰코(稲田奈津子) 사료편찬소 교수, 그 외 대학원 수업에서의 선생님들과 여러 동학들(須原, 石田, 馬場, 野尻, 新井, 有富, 浅野, 佐々田 제씨)과 사료편찬소의 여러분에게도 감사한다. 교토(京都)에 있는 니치분켄(日文硏)에서 외국인공동연구원(2016년)의 기회를 준 구라모토 가즈히로(倉本一宏)상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한편으로 메마른 유학생활을 풍성하게 해준 또 하나의 가족 동경 아키가와(秋川)의 다마이(玉井) 일가와 네즈(根津)와 하쿠산(白山)의 동료들, 다키오토(瀧音能之) 선생님(駒澤대학) 일가, 이종각 선배님(전 한국 동양대학)께도 감사한다. 물론 현재의 고려대학 글로벌일본연구원의 동료들과 학내・외 동료 연구자들(동양사학회, 일본사학회, 한일관계사학회, 한국일본사상사학회, 동아시아고대학회, 한국일본학회,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포럼2020 등)의 후의와 격려도 잊을 수 없다. 출판에 있어서는 경인문화사를 소개해 주신 손승철(현 강원대학 명예교수) 선생님과 난삽한 원고를 말끔히 정리해준 편집부 한주연님께도 감사한다.
정말이지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과 귀국한 15년 동안 많은 분들과 함께 했고 또 가슴 시린 이별도 했습니다. 모든 분들께 작은 저작을 바치며 앞으로도 흔연하게 정진하겠다는 말로 고마움에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늦여름, 청산MK문화관 연구실에서
학인(學仁) 송완범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發刊之際
此刻,全球因「COVID-19」而陷入極度混亂。雖然人們說世界將劃分為疫情前後兩個階段,但今年既是韓國光復、解放75週年,也是韓日邦交正常化55週年。今年的意義在於,它再次提醒了東亞地區的韓中日三國,「歷史問題」不僅是過去的問題,也是現在的問題,甚至在某些情況下,隨時都可能成為未來的問題。儘管日本領導人強調「東亞共同體」論,而韓國領導人則強調韓國在東亞地區,介於中俄與日美之間可扮演重要角色的「韓國角色論」,但若不解決韓中日三國之間的「歷史問題」,這些言論似乎都只是空洞的政治修辭。此外,認為既然歐洲聯盟(EU)已經成功,東亞世界也能很快實現集團化的想法,看來也只是好事者和樂觀主義者的美好願望罷了。
1995年,筆者在東京大學攻讀研究生,那一年也發生了兩件震驚日本列島的重大事件,當時日本正深陷經濟蕭條。首先是造成6,400多人罹難的「阪神淡路大地震」。另一起事件是「奧姆真理教」在東京市中心散佈沙林毒氣的無差別恐怖攻擊事件。兩起事件雖然性質不同,一個是天災,一個是人禍,但幾乎在同一時期接連發生的兩起事件所帶來的衝擊是超乎想像的。當日本人飽受「平成蕭條」的經濟不景氣之苦時,這兩起事件甚至帶來了精神上的恐慌。回想起來,我認為1995年至2005年十年留學生活中感受到的日本人心境,可以歸結為一個詞——「不安」。在不安的時代裡,不可能產生從容的心境,沒有從容,就不會有自信。進一步來說,沒有自信,更不可能對他人有任何關懷。對日本這些災難的理解,促使我在目睹2011年發生的所謂「3.11東日本大地震」這一連鎖複合災難後,迅速組建了一個研究團隊,這也成為建立高麗大學全球日本研究院內「社會災難安全研究中心」,乃至於促成校內六個學院結盟成立「災難安全融合研究院」的契機。
作者在這些困難時期看到了希望,並感覺到歷史學家的任務就是讓這希望的幼苗萌芽。我認為這希望的幼苗正是透過研究他國歷史而倍增的。研究他國歷史,能夠使我們對那個國家和民族產生關懷,最終也能讓我們更客觀地審視自己的歷史。在自己的歷史中,過失往往不易察覺,承認它也需要很長時間。然而,從外部審視自己的歷史以及迄今為止對自己歷史的研究成果時,或許會發現不能僅僅如此看待,或者從他國歷史的史料和研究成果來對照,或許更容易理解,這就是一種方法論。
我的專業是日本古代史。在研究日本古代史的過程中,我對日本的歷史、日本人的心靈與文化,以及日本人生活和將要生活的日本列島,產生了理解與熱愛。進一步來說,這種思考的歸宿是對於本國歷史、人民和土地的無限理解與熱愛。
因此,作者發表了長達四分之一個世紀對被稱為日本古代國家終極形態的「日本律令國家」的研究成果。儘管關於日本律令國家的研究方法因學者而異,研究成果也因論點不同而有天壤之別,但我認為以「百濟王氏」為核心主題的專業研究卻是相當罕見的。
聽到「百濟王氏」這個詞,很容易聯想到韓國歷史中處理的百濟王的研究,但情況卻截然不同。7世紀後半葉,朝鮮半島上的百濟這個國家和百姓都消失了。然而,百濟王族的後裔在百濟滅亡後,仍在日本列島以百濟王氏之名存續,並作為日本律令國家的官員,有時甚至作為天皇家的女性,持續活躍著,這引起了人們的注意。那麼,日本律令國家出於什麼原因接納並集體化了他們?又出於什麼原因讓他們得以完整保存,對他們有何期望,這成為人們感興趣的對象。
因此,作者在追溯百濟王氏從建立到終結的過程中,確認了百濟王氏的存在與日本律令國家的建立、發展以及轉變過程等許多方面都息息相關。不僅如此,雖然663年「白村江之戰」的失敗被認為是日本律令國家形成的重要外部因素之一,但百濟王氏的建立也與「白村江之戰」後的情況有關,這一點也得到了確認。
從整體來看,上述諸多問題的理解,單憑一國史的觀點是難以做到的,這也說明了問題的複雜性。我再次確認,無論是日本律令國家的問題,還是百濟王氏的問題,都只能從東亞的視角來切入。
被稱為古代日本完成國家形態的律令國家,具有以下幾個特點。第一,基本法「律令的制定」;第二,將律令理念體現在土地上的「宮殿與京城的建設」;第三,律令國家的官方歷史記錄「官修史書的編纂」;第四,「追求東夷諸帝國的外交觀」等。本書就此以附錄形式增加了三篇論文。
這些論文是我歸國後俯瞰日本律令國家時所撰寫的一部分。在第一部末尾,加入了「『壬申之亂』與日本——與東亞世界重組相關——」;在第二部末尾,加入了「古代日本的城市與移動問題——遷宮與遷京——」;在第三部末尾,加入了「『六國史』的編纂與『日本律令國家』的修史事業」。以上三篇論文雖然是過去已發表的舊稿,但為了擴展和加強本著作第一、二、三各部的論點,特此選取相關部分刊載,特此預先說明。
最後,我必須陳述對這項成果的感謝。首先,從學術入門至今,一直在我身旁不辭辛勞地給予指導的一史金鉉九老師(現高麗大學名譽教授),我向您致以感謝。一史老師如今已屆八旬,但我仍厚顏無恥地在有空時向他請教前程。我也要感謝我在延世大學研究生院時期的指導教授朴榮載老師。此外,對我在日本東京大學研究生院的指導教授佐藤信老師(現東京大學名譽教授)以及參與博士論文指導的石上英一老師(現東京大學名譽教授),我致以無限的感謝。同時,我也要感謝在研究生院研討會上給予指導的東京大學教授大津透,以及在留學期間一直保持密切聯繫的國立歷史民俗博物館教授三上喜孝、史料編纂所教授稻田奈津子,還有研究生院課程中的各位老師和同學們(須原、石田、馬場、野尻、新井、有富、淺野、佐々田諸位)以及史料編纂所的各位。倉本一宏先生(京都日文研)給予我外國人共同研究員(2016年)的機會,我對此也銘記在心。另一方面,我也感謝讓我在枯燥的留學生活中感受到豐富的另一個家庭——東京秋川的玉井一家和根津與白山的同學們、瀧音能之老師(駒澤大學)一家、李鍾珏前輩(前韓國東洋大學)。當然,目前高麗大學全球日本研究院的同事們以及校內外研究同仁們(東洋史學會、日本史學會、韓日關係史學會、韓國日本思想史學會、東亞古代學會、韓國日本學會、東亞比較文化研究會、論壇2020等)的厚意與鼓勵,也讓我難以忘懷。在出版方面,感謝介紹我給景仁文化社的孫承哲老師(現江原大學名譽教授)以及將雜亂的稿件整理得井然有序的編輯部韓珠妍女士。
最後,我想說的是,在日本留學十年以及歸國十五年期間,我與許多人相伴,也經歷了許多令人心痛的離別。我將這本小小的著作獻給所有的人,並以「今後仍將欣然精進」來表達我的感謝。謝謝大家。
2020年夏末,青山田園文化館研究室
학인(學仁) 송완범
현재 지구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해 대단히 혼란스럽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금년은 광복(光復), 해방(解放) 75주년이 되는 해요, 한・일국교정상화 55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금년의 의미는 한・중・일의 동아시아에 있어서 ‘역사문제’가 과거의 문제가 아닌 현재의 문제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미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뇌는 ‘동아시아공동체’론을 역설하고 한국의 수뇌는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러시아와 일본・미국의 가운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한국역할론’을 강조하지만 한・중・일 삼국사이의 ‘역사문제’의 해결이 없고서는 그 말들은 어딘가 공허한 정치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또 유럽에서 유럽연합(EU)이 성사되었다고 해서 동아시아세계의 블록화도 금방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발상은 호사가와 낙관론자들의 원망(願望)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1995년에 필자는 동경대학의 대학원에서 일본유학을 시작했는데 그 해는 불황 속에 허덕이고 있던 일본열도를 뒤흔든 두 가지의 큰 사건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했다. 먼저 하나는 6,4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낳았던 ‘한신아와지(阪神淡路)대지진’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오움진리교’에 의한 동경 도심 한복판에서의 사린가스 살포에 의한 무차별테러사건이다. 두 사건은 천재(天災)와 인재(人災)라는 상이점이 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연이어 터진 두 사건이 준 충격은 상상을 절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헤이세이(平成)불황’이라는 경제적 불황에 시달리고 있을 때 일어난 두 사건은 정신적 공황마저 안겨주었다. 돌이켜보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의 10년간의 유학생활에서 느꼈던 일본인의 마음이란 ‘불안’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된다고 생각한다. 불안한 시대에 여유가 생길 리가 없고 또 여유가 없는 데 자신감이 있을 수가 없다. 나아가서는 자신감이 없는 데 남에게 배려가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일본에서의 재난에 대한 이해는 2011년에 발생한 이른바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연쇄복합재난을 목도하고는 발 빠르게 하나의 연구팀을 결성하게 했으며, 또 이것이 단초가 되어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내의 ‘사회재난안전연구센터’ 설립, 나아가 본교 내의 6개 단과대학이 결집한 ‘재난안전융합연구원’의 창립으로 이어지는데 일조가 되게 했다.
저자는 이러한 곤란의 시기에서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의 싹을 피워내는 것이 역사가의 작업이 아닌가를 느낀다. 그 희망의 싹은 다름 아닌 타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서 배가되는 것이라고 느낀다. 타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일은 그 나라와 그 민족에 대한 배려를 얻게 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자국의 역사를 더욱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는 것이다. 자국의 역사에서 허물은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고 또 그것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지만 밖에서 자국의 역사와 지금까지 행해진 자국역사의 연구 성과를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 없겠다든가 타국사의 이 사료와 이 연구 성과와 맞추어보면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까 하는 방법론이다.
본인의 전공은 일본고대사이다. 일본고대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의 마음과 문화 그리고 일본인들이 살아왔고 살아갈 일본열도에 대해 이해와 애정을 갖게 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사고의 귀착점은 자국의 역사와 그 민중과 국토에 대한 가없는 이해와 애정으로 귀결된다.
이에 저자는 일본고대국가의 도달점이라고 말해지는 ‘일본율령국가’에 대해 사반세기에 걸쳐 연구했던 것을 발표한다. 일본율령국가에 대한 연구의 접근방법은 논자에 따라 가지각색이고 논점에 따라 천양지차의 연구 성과가 있지만 ‘백제왕씨’를 중심소재로 한 전문 연구는 별로 드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제왕씨라는 말에 한국사에서 취급하는 백제왕의 연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정은 전혀 다르다. 7세기 후반 한반도에서 백제라는 나라와 백성은 사라져 없어졌다. 그런데 백제왕족의 후손들이 백제멸망 후에도 일본열도에서 백제왕씨라는 이름으로 온존되어 일본율령국가의 관인으로서 때로는 천황가의 여성으로써 면면히 활동하고 있는 것이 눈에 뛴다. 그렇다면 일본율령국가는 어떤 이유에서 이들을 받아들여 집단화시켰는가. 또 어떤 이유로 그들을 온전하게 해서 무엇을 기대하였든 가가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저자는 백제왕씨의 성립에서부터 종언에 이르기 까지를 추적하는 가운데 벡제왕씨의 존재가 일본율령국가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변환의 과정 등의 여러 면에서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고 일본율령국가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로서 대외적 문제 즉 663년의 ‘백촌강의 싸움’의 패배가 이야기되지만 백제왕씨의 성립에 있어서도 ‘백촌강의 싸움’ 후의 사정이 관련되는 것이 역시 확인되었다.
또 전체적으로 보면 위의 여러 문제의 이해가 일국사적인 관점만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다는데 문제의 복잡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율령국가의 문제도 백제왕씨의 문제도 역시 동아시아적 관점에서의 접근에서만이 가능한 것임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일본의 완성된 국가형태라고 말해지는 율령국가는 다음의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기본법인 ‘율령의 제정’ 둘째, 율령의 이념을 토지에 구현한 ‘궁(宮)과 경(京)의 건설’ 셋째, 율령국가의 공식 역사기록인 ‘관찬 사서의 편찬’ 넷째, ‘동이의 소제국을 지향하는 대외관’ 등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론 형식으로 세 편의 논문을 첨가하고 있다.
이 논문들은 귀국 후 일본율령국가를 부감하는 중에 집필한 것 중의 일부이다. 제1부 말미에, 「‘임신의 난’과 日本—동아시아세계의 재편과 관련하여—」, 또한 제2부 말미에, 「고대 일본의 도시와 이동의 문제—遷宮과 遷京—」, 마지막 제3부 말미에, 「‘육국사(六國史)’의 편찬과 ‘일본율령국가’의 수사(修史)사업」등이 그것이다. 이상의 세 편의 논고는 이전에 발표한 구고이지만, 본 논저의 1, 2, 3 각 부의 논지를 확장 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해 관련 있는 부분을 중심으로 발췌 게재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성과에 대한 감사의 변을 서술해야겠다. 우선 학문의 입구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곁에서 노심초사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일사(一史) 김현구 선생님(현 고려대학 명예교수)께 감사를 올린다. 일사 선생님은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지만 염치없게도 제자는 틈날 때마다 갈 길을 여쭈어 보려 한다. 연대대학원 재학 시절의 지도교수 박영재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일본 동경대학대학원에서의 지도교수였던 사토 마코토(佐藤信) 선생님(현 동경대학 명예교수)과 박사논문의 지도에 관여해 주신 이시가미 에이이치(石上英一) 선생님(현 동경대학 명예교수)께도 가없는 감사를 드린다. 또 대학원의 세미나수업에서 지도를 해주신 오쓰 도오루(大津透) 동경대 교수, 유학 기간 내내 끈끈한 인연을 맺은 미카미 요시타카(三上喜孝) 국립역사민속박물관 교수, 이나다 나쓰코(稲田奈津子) 사료편찬소 교수, 그 외 대학원 수업에서의 선생님들과 여러 동학들(須原, 石田, 馬場, 野尻, 新井, 有富, 浅野, 佐々田 제씨)과 사료편찬소의 여러분에게도 감사한다. 교토(京都)에 있는 니치분켄(日文硏)에서 외국인공동연구원(2016년)의 기회를 준 구라모토 가즈히로(倉本一宏)상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한편으로 메마른 유학생활을 풍성하게 해준 또 하나의 가족 동경 아키가와(秋川)의 다마이(玉井) 일가와 네즈(根津)와 하쿠산(白山)의 동료들, 다키오토(瀧音能之) 선생님(駒澤대학) 일가, 이종각 선배님(전 한국 동양대학)께도 감사한다. 물론 현재의 고려대학 글로벌일본연구원의 동료들과 학내・외 동료 연구자들(동양사학회, 일본사학회, 한일관계사학회, 한국일본사상사학회, 동아시아고대학회, 한국일본학회, 동아시아비교문화연구회, 포럼2020 등)의 후의와 격려도 잊을 수 없다. 출판에 있어서는 경인문화사를 소개해 주신 손승철(현 강원대학 명예교수) 선생님과 난삽한 원고를 말끔히 정리해준 편집부 한주연님께도 감사한다.
정말이지 마지막으로 10년간의 일본 유학 생활과 귀국한 15년 동안 많은 분들과 함께 했고 또 가슴 시린 이별도 했습니다. 모든 분들께 작은 저작을 바치며 앞으로도 흔연하게 정진하겠다는 말로 고마움에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늦여름, 청산MK문화관 연구실에서
학인(學仁) 송완범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發刊之際
此刻,全球因「COVID-19」而陷入極度混亂。雖然人們說世界將劃分為疫情前後兩個階段,但今年既是韓國光復、解放75週年,也是韓日邦交正常化55週年。今年的意義在於,它再次提醒了東亞地區的韓中日三國,「歷史問題」不僅是過去的問題,也是現在的問題,甚至在某些情況下,隨時都可能成為未來的問題。儘管日本領導人強調「東亞共同體」論,而韓國領導人則強調韓國在東亞地區,介於中俄與日美之間可扮演重要角色的「韓國角色論」,但若不解決韓中日三國之間的「歷史問題」,這些言論似乎都只是空洞的政治修辭。此外,認為既然歐洲聯盟(EU)已經成功,東亞世界也能很快實現集團化的想法,看來也只是好事者和樂觀主義者的美好願望罷了。
1995年,筆者在東京大學攻讀研究生,那一年也發生了兩件震驚日本列島的重大事件,當時日本正深陷經濟蕭條。首先是造成6,400多人罹難的「阪神淡路大地震」。另一起事件是「奧姆真理教」在東京市中心散佈沙林毒氣的無差別恐怖攻擊事件。兩起事件雖然性質不同,一個是天災,一個是人禍,但幾乎在同一時期接連發生的兩起事件所帶來的衝擊是超乎想像的。當日本人飽受「平成蕭條」的經濟不景氣之苦時,這兩起事件甚至帶來了精神上的恐慌。回想起來,我認為1995年至2005年十年留學生活中感受到的日本人心境,可以歸結為一個詞——「不安」。在不安的時代裡,不可能產生從容的心境,沒有從容,就不會有自信。進一步來說,沒有自信,更不可能對他人有任何關懷。對日本這些災難的理解,促使我在目睹2011年發生的所謂「3.11東日本大地震」這一連鎖複合災難後,迅速組建了一個研究團隊,這也成為建立高麗大學全球日本研究院內「社會災難安全研究中心」,乃至於促成校內六個學院結盟成立「災難安全融合研究院」的契機。
作者在這些困難時期看到了希望,並感覺到歷史學家的任務就是讓這希望的幼苗萌芽。我認為這希望的幼苗正是透過研究他國歷史而倍增的。研究他國歷史,能夠使我們對那個國家和民族產生關懷,最終也能讓我們更客觀地審視自己的歷史。在自己的歷史中,過失往往不易察覺,承認它也需要很長時間。然而,從外部審視自己的歷史以及迄今為止對自己歷史的研究成果時,或許會發現不能僅僅如此看待,或者從他國歷史的史料和研究成果來對照,或許更容易理解,這就是一種方法論。
我的專業是日本古代史。在研究日本古代史的過程中,我對日本的歷史、日本人的心靈與文化,以及日本人生活和將要生活的日本列島,產生了理解與熱愛。進一步來說,這種思考的歸宿是對於本國歷史、人民和土地的無限理解與熱愛。
因此,作者發表了長達四分之一個世紀對被稱為日本古代國家終極形態的「日本律令國家」的研究成果。儘管關於日本律令國家的研究方法因學者而異,研究成果也因論點不同而有天壤之別,但我認為以「百濟王氏」為核心主題的專業研究卻是相當罕見的。
聽到「百濟王氏」這個詞,很容易聯想到韓國歷史中處理的百濟王的研究,但情況卻截然不同。7世紀後半葉,朝鮮半島上的百濟這個國家和百姓都消失了。然而,百濟王族的後裔在百濟滅亡後,仍在日本列島以百濟王氏之名存續,並作為日本律令國家的官員,有時甚至作為天皇家的女性,持續活躍著,這引起了人們的注意。那麼,日本律令國家出於什麼原因接納並集體化了他們?又出於什麼原因讓他們得以完整保存,對他們有何期望,這成為人們感興趣的對象。
因此,作者在追溯百濟王氏從建立到終結的過程中,確認了百濟王氏的存在與日本律令國家的建立、發展以及轉變過程等許多方面都息息相關。不僅如此,雖然663年「白村江之戰」的失敗被認為是日本律令國家形成的重要外部因素之一,但百濟王氏的建立也與「白村江之戰」後的情況有關,這一點也得到了確認。
從整體來看,上述諸多問題的理解,單憑一國史的觀點是難以做到的,這也說明了問題的複雜性。我再次確認,無論是日本律令國家的問題,還是百濟王氏的問題,都只能從東亞的視角來切入。
被稱為古代日本完成國家形態的律令國家,具有以下幾個特點。第一,基本法「律令的制定」;第二,將律令理念體現在土地上的「宮殿與京城的建設」;第三,律令國家的官方歷史記錄「官修史書的編纂」;第四,「追求東夷諸帝國的外交觀」等。本書就此以附錄形式增加了三篇論文。
這些論文是我歸國後俯瞰日本律令國家時所撰寫的一部分。在第一部末尾,加入了「『壬申之亂』與日本——與東亞世界重組相關——」;在第二部末尾,加入了「古代日本的城市與移動問題——遷宮與遷京——」;在第三部末尾,加入了「『六國史』的編纂與『日本律令國家』的修史事業」。以上三篇論文雖然是過去已發表的舊稿,但為了擴展和加強本著作第一、二、三各部的論點,特此選取相關部分刊載,特此預先說明。
最後,我必須陳述對這項成果的感謝。首先,從學術入門至今,一直在我身旁不辭辛勞地給予指導的一史金鉉九老師(現高麗大學名譽教授),我向您致以感謝。一史老師如今已屆八旬,但我仍厚顏無恥地在有空時向他請教前程。我也要感謝我在延世大學研究生院時期的指導教授朴榮載老師。此外,對我在日本東京大學研究生院的指導教授佐藤信老師(現東京大學名譽教授)以及參與博士論文指導的石上英一老師(現東京大學名譽教授),我致以無限的感謝。同時,我也要感謝在研究生院研討會上給予指導的東京大學教授大津透,以及在留學期間一直保持密切聯繫的國立歷史民俗博物館教授三上喜孝、史料編纂所教授稻田奈津子,還有研究生院課程中的各位老師和同學們(須原、石田、馬場、野尻、新井、有富、淺野、佐々田諸位)以及史料編纂所的各位。倉本一宏先生(京都日文研)給予我外國人共同研究員(2016年)的機會,我對此也銘記在心。另一方面,我也感謝讓我在枯燥的留學生活中感受到豐富的另一個家庭——東京秋川的玉井一家和根津與白山的同學們、瀧音能之老師(駒澤大學)一家、李鍾珏前輩(前韓國東洋大學)。當然,目前高麗大學全球日本研究院的同事們以及校內外研究同仁們(東洋史學會、日本史學會、韓日關係史學會、韓國日本思想史學會、東亞古代學會、韓國日本學會、東亞比較文化研究會、論壇2020等)的厚意與鼓勵,也讓我難以忘懷。在出版方面,感謝介紹我給景仁文化社的孫承哲老師(現江原大學名譽教授)以及將雜亂的稿件整理得井然有序的編輯部韓珠妍女士。
最後,我想說的是,在日本留學十年以及歸國十五年期間,我與許多人相伴,也經歷了許多令人心痛的離別。我將這本小小的著作獻給所有的人,並以「今後仍將欣然精進」來表達我的感謝。謝謝大家。
2020年夏末,青山田園文化館研究室
학인(學仁) 송완범
- 出版地 : 韓國
- 語言 : 其他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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