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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수행화원 연구 朝鮮通信使隨行畫員研究

出版日期
2020/10/30
閱讀格式
PDF
書籍分類
學科分類
ISBN
9788949908076

本館館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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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책을 펴내면서 l이 글은 조선후기 일본에 파견된 12인의 조선통신사 수행화원들에 대한 필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역사적배경이 되는 조선통신사는 임진・정유 왜란 이후 조・일간의 국교회복을 위해 재개된 문화사절단으로 정미통신사(1607)부터 신미통신사(1811)까지 총 12차례에 이르는 대규모 집단이었다.조선통신사로 파견된 구성원들 가운데 기예를 갖춘 인물들은 조선을 대표할만한 기량을 갖춘이들로 구성되었으며, 이는 수행화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정미통신사(1607)의 이홍규, 정사통신사(1617)의 유성업, 갑자통신사(1624)의 이언홍, 병자(1636)계미통신사(1643)의 김명국, 계미통신사(1643)의 이기룡, 을미통신사(1655)의 한시각, 임술통신사(1682)의 함제건, 신묘통신사(1711)의 박동보, 기해통신사(1719)의 함세휘, 무진통신사(1748)의 이성린, 계미통신사(1763)의 김유성, 신미통신사(1811)의 이의양 등 모두 12명이 수행화원으로 활약했으며, 그들은 사행기간 중 조선의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데 혁혁한 업적을 세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화원들에 대한 연구는 물론 그들의 업적에 대한 올바른 평가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글은 상기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행 참여 화원들의 출신과 가문, 국내에서의 활동을 개괄한 후 통신사 수행화원으로서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더불어 사행이후 다시 국내에서의 활약을 정리함으로써 그들의 활동과 생애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다.조선통신사를 문화교류사절로 본다는 측면에 본다면 1636년 병자통신사 김명국을 통해 문화교류가 실질적으로 시작되었고 1643년 계미통신사의 성격이 문화로 확정 된다. 특히 이런 확증은 계미통신사에서 김명국과 이기룡의 파견과 1655년 한시각의 활동이 사행기록에 다수 기록된 점을 들 수 있다. 이후 1682년 처음 등장한 문학이 시문창화를 통해 폭넓고 조금 더 다양한 문화교류의 장을 엶으로써 시서화를 통한 조일교류를 통하게 했다. 정치적 사안이 중심이었던 통신사행은 수행화원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그 영역을 확대되었고, 일본 역시 거국적인 축제문화 중 가장 으뜸인 문화행사로 인식하였다. 이처럼 통신사행은 문화교류가 중심이었기때문에 약 200년간 이어올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사안으로 인해 서로 간의 교류가 좁아지고 있는 한・중・일 3국의 현실개선에도 일정한 지표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이글을 책으로 출판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도움을 주신 존경하는 손승철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덕분에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총서에 삽입 될 도판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기꺼이 문제를 풀어주신 강남주총장님과 신리화선생님께도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함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2020년 10월부산에서 저자 이정은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出版本書緣起│
這篇文章是筆者博士學位論文的修訂補充,該論文探討了朝鮮後期派遣至日本的12位朝鮮通信使隨行畫員。作為歷史背景的朝鮮通信使,是壬辰、丁酉倭亂後,為恢復朝、日邦交而重啟的文化使節團,從丁未通信使(1607年)到辛未通信使(1811年)為止,共計12次,是一個大規模的集團。
在被派遣為朝鮮通信使的成員中,具備技藝的人物都是擁有足以代表朝鮮的技藝之人,隨行畫員的情況也同樣如此。從丁未通信使(1607年)的李弘奎,到丁巳通信使(1617年)的柳成業,再到甲子通信使(1624年)的李彦洪,丙子(1636年)癸未通信使(1643年)的金明國,癸未通信使(1643年)的李麒龍,乙未通信使(1655年)的韓時覺,壬戌通信使(1682年)的咸濟建,辛卯通信使(1711年)的朴東輔,己亥通信使(1719年)的咸世輝,戊辰通信使(1748年)的李聖麟,癸未通信使(1763年)的金有星,以及辛未通信使(1811年)的李義陽等,共有12位隨行畫員活躍其間,他們在使行期間將朝鮮文化傳播到日本,建立了卓越的功績。
儘管如此,對於這些畫員的研究,甚至對其成就的正確評價,都未能充分進行。本文抱持上述問題意識,在概述了參與使行的畫員出身、家族和國內活動之後,正式探討他們作為通信使隨行畫員的活動。同時,透過整理使行之後他們在國內的活躍,力求全面理解他們的活動和生平。
若從將朝鮮通信使視為文化交流使節的角度來看,文化交流實質上始於1636年丙子通信使金明國,並於1643年癸未通信使時期確立了其文化性質。特別是,癸未通信使派遣金明國和李麒龍,以及1655年韓時覺的活動在使行記錄中多有記載,這證明了上述觀點。此後,1682年首次登場的文學透過詩文唱和,開啟了廣泛而多樣的文化交流場域,促成了透過詩書畫進行的朝日交流。原以政治議題為中心的通信使行,由於隨行畫員的活動而擴大了其作為文化交流場域的範圍,日本也將其視為舉國慶典文化中最為傑出的文化活動。正是由於這種以文化交流為中心,通信使行才能持續約200年。這種歷史經驗,對於改善當前因政治、經濟、軍事議題而導致交流日益狹窄的韓、中、日三國現實,也能提供一定的指標。
感謝尊敬的孫承哲教授,從頭到尾幫助我將這篇文章出版成書。多虧了教授,我才能獲得更進一步成長的機會。
同時,再次向慷慨協助解決叢書圖版問題的江南柱總長和申莉華老師致以誠摯的謝意。非常感謝。
2020年10月
作者李貞恩於釜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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